비틀즈 리마스터링의 과정과 공로자들 by 석원

*BRUT에 쓴 비틀즈 리마스터링관련 글입니다. BRUT는 KT&G상상마당에서 발행하는 무가지입니다.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배포한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비틀즈The Beatles의 마지막 앨범 "Let It Be"가 콤팩트디스크로 바뀌는데 17년밖에 안 걸렸다. 그러나 비틀즈의 CD가 최신의 디지털 기술로 업그레이드되기까지 무려 22년이 걸렸다. 그사이 밥 딜런Bob Dylan이나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같은 비틀즈의 동년배들은 최소한 두 번 이상 리마스터링과 함께 재발매됐다.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비틀즈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놓고 봐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22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우리는 21세기의 최신 기술로 단장한 비틀즈를 만났다. 이 만남은 스무해의 기다림을 보상해주고 남을 만큼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을까?

알려진 대로 런던 애비로드Abbey Road 스튜디오(비틀즈가 데뷔부터 해체 때까지 줄곧 작업했던 EMI소유의 녹음실)의 간판급 엔지니어들이 비틀즈의 카탈로그를 모두 업데이트 하는데 걸린 시간은 4년이다. EMI는 엔지니어들이 2005년에 작업을 시작해 2009년 초 비로소 비틀즈 관계자들과 EMI 최고 수뇌부의 OK사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비틀즈 카달로그가 2009년 9월 9일 전 세계 동시발매 된다는 첫 번째 보도자료가 공개된 것이 지난 4월 8일이었다. 이를 보면 리마스터링 작업에 긴 시간을 쏟은 것과 달리 재발매 기획 자체는 급하게 내려진 결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보안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져졌다. 재발매 일정이 확정됨과 거의 동시에 공개됐으니 이쪽은 밖으로 새어나갈 틈이 없었지만 애비로드에서 비틀즈의 음원들을 손보고 있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조지 해리슨의 미망인 올리비아 해리슨이 2008년에 비틀즈 리마스터링 작업이 완료됐다는 것을 인터뷰에서 언급하긴 했지만 비틀즈 관련 소식들은 공식확인 되거나 실물을 접하기 전까지는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에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설혹 사실이더라도 소문만 무성하던 비틀즈 음원의 다운로딩 서비스를 위한 작업이지 CD 재발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였다.

비틀즈가 남긴 음악적 유산, 오리지널 앨범 13종이 적은 양이 아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정도의 작업에 4년의 시간을 투여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 달에 한 앨범씩 끝낸다고 해도 1년이면 되고, 모노와 스테레오 두 개의 버전을 따로 작업한다해도 2년이면 끝날 일정이다. 실제로는 그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애비로드의 기술진들이 심혈을 기울였고, 또 그만큼의 중압감을 느끼면서 작업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EMI는 지난 1991년 세월이 지남에 따른 손상을 막기 위해 비틀즈가 남긴 녹음들을 모두 디지털로 전환해 저장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리마스터링 프로젝트의 책임자를 맡았던 앨런 라우즈Allan Rouse가 당시 작업에 참여하면서 처음 비틀즈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앨런 라우즈를 비롯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애비로드의 엔지니어들, 가이 매씨Guy Massey, 스티브 루크Steve Rooke, 폴 힉스Paul Hicks 등은 디지털 저장본이 아닌 60년대 당시에 제작한 오리지널 아날로그 테이프를 꺼내 복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기왕에 리마스터링을 하는 만큼 철저하게 하자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이라는 단어의 이미지 때문에 리마스터링 작업은 무언가 거대한 컴퓨터에 아날로그 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자동으로 클린업된 음원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오래된 영화건 음악이건 복원작업은 수공업적이고 지루한 과정의 연속이다. 모르긴 해도 2005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애비로드의 일급 엔지니어들은 이쑤시개 하나를 들고 시스티나 대성당 벽화의 먼지를 긁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업은 실제로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우선 어디까지가 세월의 흔적으로 추가된 잡음이고 어디까지가 비틀즈가 녹음할 당시에 끼어든 소리인지를 구분해야 했다. 60년대 촌각을 다투는 비틀즈의 빠듯한 일정 속에서 수정될 틈도 없이 급하게 진행된 녹음의 결과 발생한 최종믹스의 소소한 오류들, 예를 들어 편집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거나, 믹싱 단계에서 볼륨조절의 실패 등을 일일이 찾아내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 이전에 60년대 스튜디오 기술의 여명기 시절에 대선배가 남긴 이런 실수를 역사적 측면에서 그냥 놔둘지,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수정할지를 놓고 긴 토론을 벌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발매된 비틀즈의 재발매 CD들은 기존의 CD와 100% 동일한 구성을 담고 있지 않다. 눈에 띠는 차이뿐만 아니라 눈과 귀에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까지 이들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깃들어져 있다.

리마스터링 작업은 실제 비틀즈가 녹음했던 연대기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엔지니어들은 모두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A급 멤버들이다. 이 말은 전 세계적으로도 기술력과 감각, 경력의 모든 측면에서 수위를 다투는 사람들이 작업을 맡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그 동안 폴 매카트니의 솔로 앨범이나 비틀즈 관련 기획들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유일한 약점은 비틀즈와 직접 작업을 해본 경험은 없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앨런 라우즈조차도 비틀즈가 이미 끝장 난 1971년에 애비로드에 입사했다. 이 단점을 메우기 위해 마치 자신들이 60년대로 날아가 비틀즈를 대면하고 새롭게 이 전설적인 밴드의 음악을 녹음한다는 심정으로 비틀즈의 음악적 궤적을 따라간 것이다.

리마스터링을 위한 오리지널 아날로그 테이프의 디지털 변환은 24bit/192kHz로 이루어졌다. 이는 일반CD의 해상도가 아닌 블루레이의 오디오 기준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암시하는 대목이다. 잡음의 제거와 리마스터링이 완료된 후에도 엔지니어들은 비틀즈 활동시절 발매된 LP와 87년판 CD의 재생음을 컴퓨터에 입력해 각각 비교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최종적으로는 비틀즈가 본거지로 삼았던 애비로드 3번 스튜디오에서 완성본을 재생해 기계로 잡아낼 수 없는 느낌의 미묘한 차이까지 잡아내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비틀즈 리마스터링 CD는 이런 노력과 수고의 결과다. 그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을 되짚어보면 4년이나 걸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4년 만에 끝마친 것이 용할 지경이다.

결과물에 대한 느낌은 개인차가 크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에 발매된 리마스터링판 CD는 40여년 전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서로 음을 맞추던 비틀즈의 바로 그 소리에 가장 근접한 음원이다. 기술의 한계 때문에 확장될 수 없었던 87년판 CD의 보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소리를 들려준다. '존 레논이 옆에 있는 느낌'이라는 폴 매카트니의 표현은 좀 과장이지만 20세기에 재생됐던 그 어떤 비틀즈보다 21세기의 비틀즈가 더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60년대 가정에 보급된 값싼 오디오 환경에 맞추기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베이스와 드럼의 저음역도 오늘 날의 첨단 음향기기를 위해 복원됐다. 베이스 연주자로서의 폴 매카트니의 비범함은 반세기 만에 재평가 받게 됐다. 이것은 우리가 20년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기다렸던 바로 그 사운드다.


[기사 용 박스]

A. 비틀즈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小史

1987년: 조지 마틴 지휘 아래 비틀즈의 첫 번째 디지털 리마스터링 실시
1991년: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앨런 라우즈 등이 비틀즈 녹음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
1992년: "Beatles CD Singles Collection"과 "CD EP Collection" 발매를 위한 리마스터링
1993년: "The Beatles: 1962–1966"과 "The Beatles: 1967–1970" 발매를 위한 리마스터링
2000년: 세계적 베스트셀러 "1" 앨범 제작을 위한 리마스터링
2004년: 미국 캐피톨 레코드, "The Capitol Albums" 시리즈를 위한 리마스터링 진행
2005년: 비틀즈 카달로그 재발매를 위한 리마스터링 프로젝트 시작, 2009년에 종료


B. "The Beatles in Mono"

비틀즈가 활동하던 60년대는 하이파이 오디오의 태동기로 대부분의 레코드는 모노와 스테레오 버전이 따로 존재했다. 당시 주된 음원 매체였던 LP도 다수의 모노 시스템 이용자와 소수의 스테레오 이용자를 위해 별도로 발매됐다. 그러나 70년대가 시작되기 전에 오디오, 방송 등 음악환경은 이미 스테레오가 대세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비틀즈도 영국에서는 "Yellow Submarine"까지, 미국에서는 화이트앨범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The Beatles"까지 모노와 스테레오 버전을 각각 제작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로는 스테레오로 카달로그가 통합됐고 모노 버전의 레코드는 소수의 수집가들을 위해 간간히 재발매됐다.
1987년 CD 시대로 이행한 비틀즈 카달로그는 첫 번째부터 네 번째 앨범까지는 모노버전으로 그 이후의 앨범들은 스테레오로 제작되는 복잡한 구성을 보였다. 특히 1965년에 발표된 앨범 "Help!"와 "Rubber Soul"의 경우 조지 마틴이 직접 스테레오로 다시 믹싱을 해 CD로 발매했다.
이번 비틀즈 카달로그 리마스터링 재발매의 특징 중 하나는 CD시대로의 진입 이후 오랫동안 사라졌던 비틀즈 음원의 모노 버전이 부활한 것이다. 첫 네장이 스테레오로 복원되면서 오리지널 앨범은 모두 스테레오 버전으로 통일됐다.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부터 화이트 앨범까지의 모노버전은 "The Beatles in Mono"라는 이름의 박스세트로 발매됐다. 여기에는 1987년 조지 마틴이 폐기한 "Help!"와 "Rubber Soul"의 오리지널 스테레오 믹스도 포함됐다.
또한 모노박스세트는 모두 일본에서 제작한 LP미니어쳐 형식의 패키지에 들어있어 눈길을 끌었다. 일본인들은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영국 기준 발매당시의 LP커버와 부속물을 충실히 재현해 세계의 콜렉터들을 놀라게 했다.



덧글

  • 2009/11/13 11:33 # 삭제

    담아 갈께. (길어서 나중에 읽어보려고;;;) 고마워. :)
  • 석원 2009/11/17 23:35 #

    응. 애쥬라이킷이야
  • 유투왕빠 2009/11/13 15:02 # 삭제

    잘읽었습니다.. 말도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쨋든 이번 리마스터링반은 그많은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분명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보여준거같아서 갠적으로도 흡족합니다.^^ 더불어 앞으로 더 얼마나 화려하고 더욱 눈부신 포맷으로 다시금 비틀즈원형들의 되새김..내지 우려먹기가 시장에 나온다해도,.. 정말 이번 2009 리마스터링반을 궁극의 유산으로 비틀즈는 마무리하렵니다..ㅎㅎ; 물론 비틀멤버들의 솔로작들은 완존 별개로.. 이제 시작단계이지만...orz ;;;(내년이 레논의 70주기이자 30주기라... 상자하나쯤은 또 나오겠지싶어 일단은 개별구매를 미루고있는지라.. 여기서 한번더 이와 관련된 원님의 추후전망과 견해를 살짝 여쭙니다..ㅡㅜ;;; )
  • 석원 2009/11/17 23:35 #

    올해에 나올 비틀즈 관련 상품 찍기는 이 블로그에서 정초에 하는 연례행사 이므로 1월 1일까지 기다려 주시압.
  • 류사부 2009/11/13 16:37 # 삭제

    이 글을 읽으니 더욱 더 음악이 좋게 들리네요. (아마 기분탓이겠지만)
    그리고 정보에 느려서 이제서야 알았는데,
    헬프와 러버소울에 들어있는 스테레오는 조지마틴이 폐기했던 그 스트레오였던거군요..
    우왕 잘 읽고 갑니다
  • 석원 2009/11/17 23:37 #

    뭐 헬프랑 러버소울은 꼭 알아야 할 정보도 아니지요. 또 막상 들어보니 87년도 리믹스에 비해 한계가 명확했구요.
  • giantroot 2009/11/14 09:44 # 삭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석원님의 비틀즈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군요.
  • 석원 2009/11/17 23:37 #

    애정...

    애증?

    ㅎㅎ
  • 핀투리키오 2010/08/04 14:48 #

    좋은 정보 잘 읽었습니다. 요즘 비로소 비틀즈에 빠졌는데 '1' 엘범부터 찬찬히 듣고 다른 엘범들도 하나씩 사야겠네요.
  • 석원 2010/08/07 23:45 #

    너무 급하게 몰아 구입하지 마시고 그냥 천천히 야금야금 한 장씩 구하셔서 들어보세요. ^^;;
  • kakaya 2013/11/10 01:11 # 삭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00년대 중반 발매된 비닐레코드에 디지탈 녹음에서 커팅했다라고 돼 있길래 늘 궁금해했는데 예전에 디지털로 옮긴거로 만든거였네요^^
  • 석원 2013/11/22 12:13 #

    꾸벅.
  • kakaya 2014/07/10 02:09 # 삭제

    모노 발매에 맞춰 좀 찾아보다 제가 쓴 댓글을 봤는데, 제가 언급한 앨범은 1987년 디지탈화한 음원으로 만든거네요. 87년 이후 쭉 이 음원으로 LP앨범이 발매된 듯합니다. This album has been direct metal mastered from a digitally re-mastered original tape to give the best possible sound quality라고 써있어요.
  • 석원 2015/02/15 04:55 #

    네. 본문에 말한 디지털로의 변경 저장은 원본 녹음 테이프이고 그걸로는 음반을 만들 수 없습니다. 최근에 나온 스테레오 LP와 모노 LP 이전의 비틀즈 LP는 모두 1987년 디지털 리마스터를 음원으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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