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3피, 아니 1청탁3원고... by 석원

나일론NYLON 2009년 7월호에 실린 글의 프로토 타입 원고와 변천사입니다.

[1차 원고]

한정된 지면이니 인사고 서론이고 다 잘라먹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비틀즈The Beatles를 모르는 분은 없으시리라 믿고, 다들 아시다시피 이 밴드는 1970년에 해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산이 아니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느닷없이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밴드는 끝났다. 사람들은 두 개의 가능성에 기댔다. 하나는 비틀즈가 다시 뭉치거나, 아니면 비틀즈를 대체할 무언가가 등장하는 것. 그러나 존 레논John Lennon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첫 번째 대안은 영원히 봉인됐고, 두 번째 대안만이 남았다. "또 다른 비틀즈의 등장" 그리고 지난 40여 년간 정말 셀 수없이 많은 아티스트들이 제2의 비틀즈, OO계의 비틀즈, XX나라의 비틀즈라는 칭호를 선사받았다. 그 무수한 세컨드 비틀즈들 속에서 오늘날 왕조의 법통을 가장 잘 이은 뮤지션은 분명 시저 시스터즈Scissor Sisters다. 무슨 헛소리냐고?

비틀즈가 판을 떴을 때 팬들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리라 굳게 믿었건만 어라, 삼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저 멀리 캐나다의 클라투Klaatu가 이름만 바꾼 비틀즈가 아닐까 의심했으나 미스터리는 오래 가지 않았다. 클라투는 거짓 메시아였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다행히 놀라울 정도로 폴 매카트니와 목소리가 똑같았던 에밋 로즈Emitt Rhodes가 있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음악 스타일도 폴 매카트니 판박이였던 탓에 영광스럽게도 에밋 로즈는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원맨비틀즈"라는 칭호를 얻었다. 에밋 로즈는 60년대 메리고라운드The Merry-Go-Round라는 밴드에 속해있었다. 밴드의 데뷔싱글이자 최대 히트곡인 'Live'가 바로 에밋 로즈의 작품이다. 이 곡은 1984년 뱅글스The Bangles의 데뷔 앨범 "All Over The Place"에 다시 실렸다. 뱅글스는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록밴드로, 이렇게 말하면 고고스The Go-Go's가 섭섭해 하겠지만, "여성 비틀즈"라는 칭호를 얻었다. 뱅글스는 1988년 'Eternal Flame'이라는 히트곡을 만들었다. 이 노래는 비틀즈의 우상들 중 하나이기도 한,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곡으로 2001년 아토믹 키튼Atomic Kitten이 다시 불러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아토믹 키튼은 비틀즈와 같은 리버풀 출신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고향선배(!)들의 노래를 종종 불렀다. (반응은 별로 안 좋았다.) 그런데 아토믹 키튼의 초창기 앨범들을 제작한 사람이 휴 골드스미스Hugh Goldsmith다. 런던의 이수만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휴 골드스미스가 발굴한 팀들 중 가장 성공한 사례는 블루Blue다. 베이씨티롤러스부터 시작해, 뉴키즈온더블록, 백스트리트보이스, 테이크댓 등등 모든 성공한 보이밴드의 공통점은 "제2의 비틀즈"라는 칭호를 한번쯤은 들어봤다는 것이다. 블루도 마찬가지였다. 비틀즈 골수팬들은 절대 동의 안했겠지만. 블루는 2002년 대선배 엘튼 존Elton John의 히트곡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를 다름 아닌 엘튼 존 본인과 함께 녹음해 유럽 각국 차트의 정상을 차지했다. 엘튼 존이 누군지 설명할 필요는 없으나 비틀즈 팬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양반은 존 레논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섰던 대중공연의 무대를 함께한 전설의 주인공이다. 또한 존 레논 자신이 공인한 최고의 술친구였다. 2005년 엘튼 존의 동성결혼 전야제(?)에는 역시 공인된 게이인 제이크 쉬어스Jake Shears도 초청받았다. 제이크 누구?...하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면 시저 시스터스의 보컬이다. 쉬어스는 어릴 적부터 엘튼 존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키웠다. 그런 그가 엘튼 존만큼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아티스트가 바로 윙스Wings 시절의 폴 매카트니다. 그래서 시저 시스터스의 두 번째 앨범 "Ta-Dah"에는 'Paul McCartney'라는 노래가 들어있다. 이만하면 왕실의 계통을 잇기에 손색이 없지 않나?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비틀즈에서부터 시저 시스터스까지의 흐름에는 어떤 음악적 연관도 없다. 제2의 비틀즈라는 호칭은 진정 비틀즈를 능가할 재목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상업적 동기와, 주되게는 실력 없는 비평가들의 작문이 결합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2의 비틀즈, 제2의 레드 제플린, 제2의 마돈나 따위는 잊어버리자. 음악이 무슨 세계챔피언 타이틀매치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기획 의도에 부합하지 않아 재작성했습니다. 잡지 등에 청탁받았을 때 종종 있는 일입니다.

[2차원고]

비틀즈The Beatles 해체 후 10년은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에게 있어 과히 "승리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많은 돈을 모았다. 제일 먼저 비틀즈를 뛰쳐나간 장본인이지만 세상사람 모두 비틀즈 해체의 주범은 오노 요코라고 믿게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무엇보다 음반과 공연 양쪽 모두 정상의 자리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70년대에 20대 전후의 시기를 보낸 외국인들 중에서는 폴 매카트니를 통해 비틀즈를 알게 된 이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폴 매카트니가 대중의 감성에 영합하는 일련의 히트곡들로 70년대를 장식한 것은 맞지만, 상업성 하나만으로 10년을 버틴 것은 아니다. 어지간한 아티스트들은 엄두도 못 낼 다양한 음악 실험이야말로 이 시기 폴 매카트니에게 '존재의 이유'였다. 레드 제플린 류의 스테디엄 록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내쉬빌로 날아가 컨트리를 녹음하고, 다시 자마이카로 날아가 레게를 녹음한 결과물들이 그의 앨범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이유로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발견하듯, 손자뻘 되는 아티스트들에게서 폴 매카트니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음악은 고고학이 아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폴 매카트니를 그대로 복제하는 그런 아티스트는 없다. 싸구려 이미테이션 밴드라면 모를까. 그러나 우리가 적절한 중계자를 찾아내 폴과의 조합에 성공한다면, 마치 레고 블록처럼 다양한 뮤지션들을 창조(?)해 내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폴 매카트니+AC/DC=제트Jet 이름부터 폴의 히트곡 제목을 연상시키는 이 오스트레일리아 밴드를 인수분해하면 수많은 록의 전설들이 튀어나온다. 비틀즈, 스톤즈, 후, 스투지스 등등. 그러나 제트의 자원재활용 사운드는 70년대 폴 매카트니의 또 다른 자아인 윙스Wings의 멜로디 라인과 고향선배인 AC/DC의 소란스러운 기타를 두서없이 뒤섞으면서 시작됐다. Track of proof: 'Stand Up' from the album "Shine On"

폴 매카트니+아메리카America=플리트 폭시스Fleet Foxes 플리트 폭시스의 두 얼굴은 인디 포크와 바로크 팝이다. 전자는 닐 영으로부터 직접 계승했지만, 후자는 폴 매카트니로부터 조지 마틴을 거쳐 아메리카로 이어졌고 폭시스의 데뷔 앨범 곳곳에 스며들었다. Track of proof: 'Blue Ridge Mountains' from the album "Fleet Foxes"

폴 매카트니+에코앤더버니멘Echo & the Bunnymen=코랄The Coral 좀비를 만드는 부두교의 마법을 빌려와 폴의 "Ram" 앨범에 버니멘의 “The Killing Moon”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 둘 중의 하나다. 아주 흉측한 괴물이 튀어나오거나 코랄 같은 밴드가 태어나거나. (셋 다 리버풀 출신이라는 건 그냥 우연이다.) Track of proof: 'Pass It On' from the album "Magic and Medicine"

폴 매카트니+잼The Jam=쿠루리Quruli 폴 매카트니는 항상 펑크의 타도대상 1순위였다. 폴 웰러가 아니었다면 정말 타도됐을지도 모른다. 레게 말고도 브리티쉬 비트의 탈출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해준 잼의 음악은 저 멀리 교토의 청년들이 밴드를 결성하도록 북돋웠다. 쿠루리의 "Nikki" 앨범은 21세기에 발매된 가장 영국적인 일본 음반이다. Track of proof: 'Bus To Finsbury' from the album "Nikki"

폴 매카트니+프랭키고즈투헐리웃Frankie Goes to Hollywood=시저 시스터스Scissor Sisters 시저 시스터스의 보컬 제이크 쉬어즈가 고백한 두 우상은 엘튼 존과 폴 매카트니다. 그러나 엘튼 존은 게이 커뮤니티의 세례요한이지만 폴 매카트니는 귀여운 아저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쉬어즈는 폴의 사운드를 게이의 문법으로 번역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컬쳐클럽 대신 프랭키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안목이었다. Track of proof: 'Paul McCartney' from the album "Ta-Dah"


그러나, 이것마저도 빨간불!
될대로 되라하는 심정으로 3차 작성에 들어갔습니다.


[3차원고]

비틀즈The Beatles 해체 후 10년은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에게 있어 과히 "승리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음반과 공연 양쪽 모두 정상의 자리를 지켰고 그 덕에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많은 돈을 모았다. 제일 먼저 비틀즈를 뛰쳐나간 장본인이지만 세상사람 모두 비틀즈 해체의 주범은 오노 요코라고 믿게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그래서 70년대에 20대 전후의 시기를 보낸 외국인들 중에서는 폴 매카트니를 통해 비틀즈를 알게 된 이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폴 매카트니가 대중의 감성에 영합하는 일련의 히트곡들로 70년대를 장식한 것은 맞지만, 상업성 하나만으로 10년을 버틴 것은 아니다. 어지간한 아티스트들은 엄두도 못 낼 다양한 음악 실험이야말로 이 시기 폴 매카트니에게 '존재의 이유'였다. 레드 제플린 류의 스테디엄 록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내쉬빌로 날아가 컨트리를 녹음하고, 다시 자메이카로 날아가 레게를 녹음한 결과물들이 그의 앨범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런 이유로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발견하듯, 다른 아티스트들에게서 폴 매카트니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전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우선 폴의 모국인 영국에서 출발해 보자. 9/11공격으로 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21세기가 시작됐다는 감격이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던 2002년, 리버풀 아래 동네에서는 코랄The Coral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벨앤세바스챤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리화나를 피운 다음에 폴 매카트니의 히트곡을 연주하는 듯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근사했다. 만약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리화나를 피운 다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히트곡을 부르는 듯한 사운드를 들려줬다면 사람들은 코랄의 무대에 쓰레기를 던졌을 것이다. 코랄이 폴 매카트니의 멜로디 라인을 차용한 것은 여러모로 현명했다.

한때영국땅이었지만지금은아닌오스트레일리아에는 제트Jet가 있다. 이름부터 폴의 히트곡 제목을 연상시키는 이 오스트레일리아 밴드를 인수분해하면 수많은 록의 전설들이 튀어나온다. 비틀즈, 스톤즈, 후, 스투지스, 등등. 그러나 고향선배인 AC/DC에게서 배운 소란스러운 기타를 벗겨내면 제트의 맨 음악에는 70년대 폴 매카트니의 또 다른 자아인 윙스Wings의 문신이 여기 저기 새겨져 있다. 못 믿겠으면 밴드의 두 번째 앨범 "Shine On"을 들어보라.

일본에는 쿠루리Quruli가 있다. 확실히 교토는 일렉트릭 기타보다는 사미센 소리가 어울리는 도시다. 이런 교토에서 쿠루리의 멤버들은 레지스탕스가 나치 몰래 BBC방송을 듣듯 폴 매카트니를 위시한 브리티쉬 비트를 들으며 밴드의 꿈을 키웠다. 2005년에 발매된 앨범 "Nikki"는 21세기에 발매된 가장 영국적인 일본 음반이다. 그래서 앨범의 첫 곡 'Bus To Finsbury'에서 밴드는 이렇게 외쳤다. '상큐 비또루즈!(Thank you, Beatles!)'

윙스의 음악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안에 닿으면 플리트 폭시스Fleet Foxes를 만나게 된다. 플리트 폭시스를 구성하는 두 개의 DNA는 인디 포크와 바로크 팝이다. 전자는 닐 영으로부터 직접 물려받은 유전자다. 그래서 사람들은 플리트 폭시스를 들을 때마다 닐 영의 얼굴을 떠올린다. 후자는 족보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폴 매카트니의 멜로디와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플리트 폭시스를 들을 때 폴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폴 매카트니의 멜로디가 캘리포니아를 거쳐 시애틀로 흘러가 플리트 폭시스 같은 밴드에게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이 바로 로큰롤의 진화론이다.

대륙을 횡단해 마지막 여행지 뉴욕에 도착하면 시저 시스터스Scissor Sisters가 있다. 시저 시스터스의 보컬 제이크 쉬어즈가 고백한 두 우상은 엘튼 존과 폴 매카트니다. 그러나 엘튼 존은 게이 커뮤니티의 세례요한이지만 폴 매카트니는 게이들에게 귀여운 아저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쉬어즈는 폴의 사운드를 게이의 문법으로 번역해야 했다. 그 결과가 "Ta-Dah" 앨범에 실린 'Paul McCartney'다. 이 노래에서 쉬어즈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이것이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음악인가요?Is it the music that connects me to you?' 그 음악이 폴 매카트니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대답은 언제나 '예스'다.


이걸 쓴 게 마감날 새벽이었습니다. TT



덧글

  • 새침떼기 2009/11/13 02:47 #

    기획의도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세 버젼 다 재미있구먼유.
    아, 그나저나 아직도 안 사고 개기고 있는데..-_ㅜ
  • 석원 2009/11/17 23:34 #

    쥬얼케이스 나오면 그 때 사세요. 그리고 구판 있으시면 뭐 꼭 살 필요 있을까요? (단 화이트앨범은 지금 장만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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