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제국의 몰락 by 석원

* 이 글은 제가 99년에 영국문화원에서 비틀즈 관련 행사를 할 때 쓴 글입니다. 저도 원본을 잃어버려 썼다는 기억만 하고 있었는데 몇일 전 웹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영화 LET IT BE를 상영하면서 영화 촬영시의 비틀즈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Coming Down Fast! - 69년의 비틀즈와 제국의 종말


화이트 앨범은 이미 비틀즈가 하나의 밴드가 아니라 네 명의 뮤지션의 연합체임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비틀즈는 68년의 하반기를 비틀즈와 관련이 없이 보냈다. 이는 66년말 공연중단을 선언하고 나서 가졌던 긴 휴식기를 연상시켰다.

69년을 며칠 앞두고 비틀즈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였다. 논의를 주도했던 것은 폴 매카트니였다. 훗날 호사가들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죽음 이후로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를 지배하려 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폴이 비틀즈를 장악하려했다기 보다는 당시에 네 명의 비틀 중에서 비틀즈라는 밴드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폴이었기 때문에 폴이 마치 비틀즈를 주도하는 듯이 보여 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의 한 원인이 되었다.

68년 말 비틀즈가 합의한 것들 몇 가지는, 우선 새 앨범을 녹음한다는 것과 그 녹음과정을 영화로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66년 공연중단 이후 처음으로 공연을 가지기로 뜻을 모았다. 결국 이중 어느 것도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지만 아무튼 "GET BACK" 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는 69년, 새해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년의 추운 겨울날 비틀즈가 모인 곳은 녹음스튜디오가 아니라 런던 근교의 영화 촬영장인 트위켄헴 스튜디오였다. 녹음과정을 촬영하기 위해서 좁은 녹음실 안에 촬영기재를 설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촬영 스튜디오란 커다란 창고나 다름이 아니었고 그 매서운 겨울 공기가 아니더라도 비틀즈는 이미 아주 차갑게 냉각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트위켄헴에서의 촬영은 말다툼 끝에 중단되었다. 모든 프로젝트가 무산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폴은 고착상태에 빠진 프로젝트를 살리기 위해 멤버들을 다시 불러모았고 성난 멤버들, 특히 죠지를 달래 다시 녹음과 촬영을 재개하기로 했다. 녹음은 새로 개장한 애플스튜디오로 옮겨 진행하기로 했고 촬영도 재개됐다. 하지만 영화는 텔레비젼용 다큐멘터리로 변경 되었다가 다시 영화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재개된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3년만의 비틀즈의 공연이었다. 당시 네 명 모두 무대에 대한 향수와 뮤지션으로서 라이브에 대한 욕구를 느끼고 있었지만 3년간 무대에 서지 못했다는 점과 66년과는 주변환경이 너무 많이 변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선뜻 나서질 못하던 상황이었다. 논의 끝에 대중적인 콘서트가 아니라 역사적인 명소에서 무관객 공연을 하고 이를 필름에 담기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무산되었고 결국 역사적인 명소가 아니라 애플 스튜디오에서 매우 가까운, 애플 스튜디오의 옥상으로 결정이 났다. (애초의 비틀즈의 아이디어는 훗날 핑크 플로이드에 의해 실현되었다.)

1969년 1월 30일 겨울바람이 매섭게 치던 날 비틀즈는 애플 사옥의 옥상에서 전설적인 공연을 '느닷없이' 벌였다. 그것은 비틀즈의 마지막 공연이었고 소수의 운좋은 사람들만이 그 현장을 함께 했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비틀즈는 이후 일년간 수많은 마지막 일들을 했다. 마지막 녹음, 마지막 사진 촬영 등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GET BACK" 프로젝트는 이렇게 종결되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비틀즈 멤버들은 결과물에 만족할 수 없었고 두 번이나 앨범용 마스터를 만들었지만 모두 OK사인을 받지 못했고 점점 귀찮은 짐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과연 이 녹음들이 발매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영화 제작도 계속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계속 되자 폴은 그해 여름 새로운 앨범의 제작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영화나 콘서트 같은 번거로운 것들을 고려하지 않았고 방향도 지금껏 해오던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이게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 해 여름 공개된 그들의 새 앨범은 그들이 대부분의 음악을 녹음했던 스튜디오인 Abbey Road의 이름을 따왔다. 특별한 의미가 없으면서도 가장 의미심장한 타이틀인 애비 로드는 대부분 "GET BACK"의 녹음 때 작곡된 것들이고 시간적 간격도 큰 차이가 없는 것들임에도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애비 로드는 화이트 앨범보다도 더 확연해진 각자의 개성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통일성은 오히려 더 높은 편이다. 물론 이러한 통일성의 대부분은 뒷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애비 로드 메들리의 덕택이다. 애비 로드 메들리는 한 밴드가 구축했던 거대한 제국의 쓸쓸한 종말에 대한 유머러스한 진혼곡이다. 그것은 적절한 엔딩이었다.

애비 로드는 호평을 받았다. 물론 잘 팔렸고 방송도 자주 나왔다. 사람들은 역시 비틀즈를 외치며 그간 비틀즈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던 루머들이 기우였다고 안심했지만 그건 루머가 아니었다. 비틀즈 네 명의 멤버들 사이에 파여진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었고 솔로활동과 사생활의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애플사의 재정문제가 심각한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 되었다는 것과 비틀즈를 지탱해주고 엮어주던 어떤 따스한 영혼 같은 것이 완전히 소진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존과 죠지, 링고 하다못해 주변의 인물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폴만은 비틀즈가 70년대에도 계속 가능하고 또 가능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폴도 비틀즈라는 것이 이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 더 이상 실재하는 밴드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다만 폴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비틀즈가 끝났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미련 없이 탈퇴를 선언했다. 폴이 어느 시점에서 이를 확인했는가는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애플의 매니지먼트를 둘러싸고 다른 세 명과 대립할 때부터 일수도 있지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폴이 자신의 의지와 달리 LET IT BE가 발매될 때 결심을 굳혔을 지도 모른다. 혹은 거리를 걷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1970년 4월의 어느 날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탈퇴를 선언했다. 음악을 넘어 역사를 만들었던 한 밴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1999. 9. 7 by 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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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따끈따하게비틀즈좋아 2008/10/07 20:48 # 삭제

    비틀즈가 그렇게 해체됬군요....너무슬픕니다.
    아직 해체 안되고 있었으면 더 많은노래를 들었을 듯....
  • 석원 2008/10/09 10:14 #

    저는 비틀즈가 적절한 시점에서 해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뭐 그들이 솔로 활동을 통해 생산한 노래들이 비틀즈 시절보다 적지도 않고요. 아쉬운 건 존 레논의 너무 이른 죽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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